[범죄 증거가 명확해도 무죄가 선고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당신 근처의 변호사, 법무법인 명재 이재희 변호사입니다.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명확하게 존재한다면 당연히 유죄가 선고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는 증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법에서 정한 절차를 지켰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이라고 합니다.
최근 실제 하급심 판결에서도 압수수색 절차를 위반해 수집한 자료의 증거능력이 부정되면서 무죄가 선고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별건 수사에 활용된 카카오톡 대화, 압수기록에서 누락된 편지, 보관 과정에 문제가 발생한 소변 시료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대출사기 수사 중 발견한 카카오톡, 별도 영장이 없었다]
첫 번째는 서울북부지방법원 2025고단2554 사건입니다.
(관련기사 : https://www.law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311)
이 사건의 피고인은 변호사였습니다.
자신이 소속된 법무법인에 지원한 수습변호사들의 이력서와 성적증명서 등을 대출사기 조직의 총책에게 전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처음부터 이 변호사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를 수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경찰은 대출사기 조직 총책의 사기 혐의를 수사하면서 그의 휴대전화를 압수했습니다.
이후 휴대전화에 저장된 카카오톡 대화를 확인하다가 해당 변호사와 주고받은 대화에서 별개의 범죄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수사 과정이었습니다.
수사기관은 새롭게 발견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에 관해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확보한 카카오톡 대화를 그대로 활용했고, 이를 토대로 변호사와 사기 조직 총책을 조사하여 피의자신문조서까지 작성했습니다.
[법원, 영장 범위를 벗어난 카카오톡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이러한 수사 방식이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초 압수수색 영장은 대출사기 혐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카카오톡 대화는 원래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객관적 관련성이 없는 별개의 정보였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새로운 범죄의 증거로 확보하려면 적법한 압수수색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별도의 영장 없이 해당 대화를 사용했습니다.
법원은 카카오톡 대화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를 토대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 역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서 파생된 자료라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남아 있는 증거만으로는 범죄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처음 휴대전화를 압수한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발견한 별개의 범죄 자료를 어떤 절차로 확보하고 사용했는지입니다.
한 사건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다른 범죄 정황을 발견했다고 해서 기존 영장으로 모든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편지를 가져갔지만 압수기록에는 '증거물 없음']
두 번째는 서울고등법원 2025노3032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동거인이 합성대마를 수거하러 갈 때 택시를 불러준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경찰은 2025년 4월 피고인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속되어 있던 동거인이 피고인에게 보낸 편지들을 발견해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압수수색 이후 작성한 서류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실제로 편지를 확보했음에도 수색조서와 수색증명서에는 압수한 증거물이 없다는 취지로 기재했습니다.
압수조서와 압수목록도 따로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가져간 편지를 촬영하고 그 사진을 수사보고서에 첨부해 증거로 활용했습니다.
실제로는 물건을 압수했지만 공식 기록에는 압수한 사실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압수조서와 압수목록은 왜 중요할까?]
형사소송법 제129조는 물건을 압수한 경우 압수목록을 작성해 소유자나 소지자 등에게 교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128조는 수색했지만 증거물이나 몰수할 물건이 없었다면 그 취지의 증명서를 교부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차는 수사기관이 어떤 물건을 가져갔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압수된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야 당사자가 압수의 적법성을 다투거나 반환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편지를 가져갔음에도 아무것도 압수하지 않은 것처럼 기록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경찰이 공식 기록으로 압수물이 없다고 확인하면서 실제로는 편지를 확보해 사용한 행위를 적법한 압수절차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해당 편지를 바탕으로 추가로 확보한 진술증거들도 문제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남아 있는 증거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압수수색에서 중요한 것은 물건을 확보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무엇을 가져갔는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법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필로폰 양성 반응에도 마약운전이 무죄가 된 사건]
마지막은 부산지방법원 2024고단3984 등 병합사건입니다.
2024년 6월, 한 남성이 경찰의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을 피해 차량을 운전하며 도주했습니다.
도주 과정에서 중앙선을 침범하고 약 900m를 역주행했으며, 결국 다른 차량들과 충돌하는 사고까지 발생했습니다.
남성은 차량을 버리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찰은 체포 과정에서 필로폰을 발견했고, 다음 날 진행한 소변 간이검사에서도 마약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소변 감정에서도 필로폰 관련 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에서 운전했다는 혐의가 충분히 입증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소변 시료를 밀봉하지 않고 반출한 경찰]
문제는 소변 시료의 보관과 이송 과정이었습니다.
경찰은 피고인에게서 소변을 제출받아 간이검사를 진행한 뒤 시료를 증거물 용기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봉인용 테이프를 붙이지 않은 상태로 조사실 밖으로 반출했습니다.
또한 경찰은 해당 시료를 당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제출했다고 진술했지만, 사실조회 결과 실제 감정 의뢰와 제출은 다음 날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재판부는 이처럼 보관과 이송 경위가 명확하지 않다면 감정에 사용된 소변이 실제 피고인에게서 채취한 시료와 동일한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보관 과정에서 시료가 오염되거나 다른 시료와 뒤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간이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점도 충분한 증거로 보지 않았습니다.
간이검사는 화학구조가 유사한 다른 약물에 반응하여 양성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법원은 필로폰 투약과 약물운전 관련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다만 필로폰 소지 등 별도로 인정된 범죄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증거능력과 증명력은 구분해야 한다]
여기서 앞선 두 사건과 부산지방법원 사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은 수사기관이 법에서 정한 압수수색 절차를 지키지 않아 증거능력이 부정된 사례입니다.
증거능력이란 해당 자료를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자격을 말합니다.
반면 부산지방법원 사건에서는 감정에 사용된 시료가 피고인의 소변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즉 감정 결과가 실제 범죄사실을 입증할 만큼 신뢰할 수 있는지, 증명력이 충분한지가 문제 된 것입니다.
증명력은 증거가 특정 사실을 얼마나 확실하게 뒷받침하는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부산지방법원 사건을 앞선 두 사건과 완전히 같은 위법수집증거 배제 사례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 사건 모두 수사기관이 증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절차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재판 결과를 바꿀 수 있다]
오늘은 세 가지 하급심 판결을 통해 증거수집과 관리 과정의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는 대출사기 수사 중 발견한 별개의 범죄 관련 카카오톡 대화를 추가 영장 없이 활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편지를 실제로 압수하고도 공식 기록에 남기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사건에서는 소변 시료의 보관과 이송 과정이 불명확해 감정 결과의 신뢰성이 충분히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세 사건 모두 범죄 혐의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었지만 증거를 확보하거나 관리한 과정의 문제로 재판 결과가 달라졌습니다.
형사재판에서는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존재하는지만큼 그 증거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되었는지, 실제 범죄사실을 입증할 만큼 신뢰할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이는 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수사의 신뢰성과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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