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먼저 폭행했는데, 왜 나까지 처벌받을까?]
안녕하세요. 당신 근처의 변호사, 법무법인 명재 이재희 변호사입니다.
상대방이 먼저 폭행하거나 흉기로 위협해 자신을 보호하려고 반격했는데, 오히려 쌍방폭행이나 특수협박 혐의로 처벌받는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형사사건에서는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더라도 대응 방식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법학에서 흔히 '싸움에는 정당방위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도 그만큼 정당방위의 성립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칼을 들고 위협할 때 그 손을 쳐서 칼을 떨어뜨리는 행동은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반면 상대방이 칼을 떨어뜨렸는데도 계속 폭행한다면 보복행위로 평가될 수 있죠.
그런데 최근 대법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삼촌의 폭행과 가위 위협, 부엌칼로 맞선 조카]
사건은 2023년 1월 발생했습니다.
A씨는 어린 시절 삼촌 B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고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이를 알게 된 B씨는 격분하여 A씨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퇴근한 A씨가 집에 들어오자 B씨는 갑자기 얼굴을 때렸고, 이에 A씨도 맞서면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동거하던 가족이 싸움을 말려 잠시 진정되는 듯했지만, B씨는 다시 서랍을 꺼내 던지고 A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약 3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손가락 상해를 입었습니다.
급기야 B씨는 가위를 집어 들고 죽이겠다는 취지로 위협했습니다.
이에 A씨도 싱크대 위에 있던 부엌칼을 들고 맞섰으며, 대치 과정에서 직접 112에 신고했습니다.
이후 B씨는 가위를 내려놓았지만, A씨는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칼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A씨는 부엌칼로 삼촌을 위협했다는 이유로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이유]
형법 제21조의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존재해야 합니다.
즉, 상대방의 공격이 진행 중이거나 급박하게 발생할 위험이 있어 이를 방어하기 위한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흉기를 내려놓은 이후에도 칼을 들고 있는 행동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1심은 A씨의 특수협박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역시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건의 경위와 참작할 사정을 고려해 벌금 30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결국 하급심에서는 삼촌이 먼저 폭행하고 가위로 위협했다는 사정에도 불구하고, A씨가 부엌칼을 든 행동에 대해 형사책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단, 정당방위가 아니어도 정당행위는 가능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A씨의 행동이 형법 제20조에서 규정하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당행위란 행위의 목적과 방법, 당시의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어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행위를 말합니다.
대법원이 제시한 정당행위의 판단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목적의 정당성: 행동의 동기와 목적이 정당한가?
- 수단의 상당성: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적절한가?
- 법익의 균형성: 보호하려는 이익과 침해되는 이익 사이에 균형이 있는가?
- 긴급성: 해당 행동을 해야 할 긴급한 사정이 있었는가?
- 보충성: 다른 실효성 있는 적법한 대응 방법이 있었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요건을 기계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A씨는 갑작스럽게 폭행을 당했고, 한 차례 싸움이 진정된 이후에도 삼촌의 공격이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삼촌이 가위를 들고 생명을 위협했으므로, A씨 입장에서는 가위를 내려놓았다고 하더라도 언제 다시 공격이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A씨는 직접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부엌에 머물렀을 뿐 추가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여 A씨의 행동이 계속되는 부당한 공격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동적·소극적 대응으로 평가될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다만 대법원이 직접 무죄를 확정한 것은 아니며,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다시 적용해 심리하도록 한 파기환송 판결이라는 점은 구별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이 중요한 이유, 방어행위는 전체 상황으로 판단해야]
제가 이번 판결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방어 과정에서 발생한 행동 하나만 따로 떼어 위법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다고 해서 그 이후의 모든 반격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이 완전히 종료되었는데도 보복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위해를 가했다면 정당방위나 정당행위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해자가 흉기를 내려놓았다고 해서 곧바로 안전이 확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폭행의 발단부터 공격의 반복 여부, 당사자들의 관계, 피해 정도, 경찰 신고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정당행위의 긴급성과 보충성을 판단할 때 다른 실효성 있는 적법한 수단이 없었는지가 중요하며, 가능한 모든 대안이 전혀 없었을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는 정당방위와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법리입니다.
[정당방위·정당행위 주장을 위한 실무 대응 방법]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폭행이나 특수협박 혐의를 받게 되었다면 단순히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습니다"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시 상황을 객관적인 증거로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다음 사항을 확인해야 합니다.
- 상대방의 최초 공격과 이후 폭행·협박이 반복된 경위
- 반격 당시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구체적인 위험
- 자신이 취한 행동의 목적과 정도, 추가적인 공격 여부
- 112 신고 내역, CCTV, 상해진단서 등 객관적인 증거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당방위뿐만 아니라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가 성립할 가능성도 검토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해서 언제나 정당방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 범죄가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억울하게 폭행·협박 등 형사사건에 연루되었다면 사건의 전체 경위와 당시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법적으로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당신 근처의 변호사, 법무법인 명재 이재희 변호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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