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불법촬영 기기 탐지기(몰카 탐지기) 무상대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개인은 몰카 탐지기를 빌릴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가 화장실 소유주에게만 몰카 탐지기를 대여하고 있다보니 대여 실적 자체가 저조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개인에게 몰카 탐지기를 빌려주지 않는 이유로 ‘공직선거법’ 위반 우려가 있다는 황당한 설명을 내놓고 있다.
몰카 탐지기 무상대여는 행정안전부가 총괄하고 서울시가 주관하는 사업으로, 2019년 1월부터 현재까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모두 시행 중이다. 대여는 공공기관이나 민간 화장실 소유자·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몰카에 실질적으로 노출돼있는 여성들은 탐지기 대여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 차례 몰카 피해를 겪은 김모(34)씨는 “회사 근처 식당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된 적이 있어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기 두렵다”며 “화장실 소유자는 대여가 가능한데, 이용하는 사람은 대여가 안 된다니 이상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노모(23)씨도 “지하철역 공공화장실 등을 이용할 때마다 불안한데, 개인이 무료로 장비를 대여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자치구 관계자들은 서울시 지침에 따라 일반 시민들에게 탐지기 대여를 못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한 자치구 관계자는 “서울시 지침에 따라 개인에게 따로 장비를 대여하지 않고 있다”며 “대여 건수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2~3건 정도, 일주일에 1건 정도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몰카 탐지기를 개인이 대여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113조와 제114조를 근거로 제시했다. 공직선거법 제113조는 ‘후보자 등의 기부행위 제한’과 관련된 내용으로,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정당의 대표자·후보자 등이 선거구 안에 있는 기관·단체·시설 등에 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114조도 정당·후보자의 가족 등의 기부행위를 제한하는 등 113조와 유사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인에게 대여가 불가능한 것은 공직선거법 제113조와 제114조를 위반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몰카 탐지기 대여가 기부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몰카 탐지기 대여와 기부행위가 무슨 상관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 설명에 나와 있는 대로 답하는 것”이라면서 ‘잘 모르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애꿎은 공직선거법으로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는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몰카로 인한 피해는 매년 20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20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몰카 피해 건수는 지난해 2228건으로, 전년(2020년) 2239건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몰카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동영상 유포를 경험하거나 유포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몰카 피해는 10대 청소년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대를 상대로 한 몰카는 지난해 758건으로 전체의 30.6%를 차지했다. 10대의 경우 피해자 3명 중 1명이 몰카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화장실 소유자나 관리자에 해당하지 않아 몰카 탐지기를 대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는 몰카는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미리 카메라를 발견하는 등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재희 법무법인 명재 변호사는 “불법촬영 피해의 경우 정황 증거가 있어도 실제 촬영물이 나오지 않으면 피해 규모가 실제 피해보다 축소된다”며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 증거를 인멸해버리면 실질적인 대응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