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이승덕 기자] 의사들의 단체행동(집단행동)이 숙의가 전제되지 않는 정부의 폭압에 따른 결과이며, 이를 헌법으로 제한하려면 질서유지·공공복리의 세부적 조건 달성이 없다면 위헌적 기본권 침해가 된다고 분석됐다.

의료계에서는 기본권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공익성 범위를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됐다.
대한의사협회 이재희 법제이사(법무법인 명재 대표변호사)<사진>는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의료정책포럼 제22권 3호에 기고한 ‘의사 단체행권의 헌법상 기본권성 인정 여부’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재희 이사는 “2024년의 대한민국은 입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의 독선과 자의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한 극기 체험장이었다”고 이번 의정 사태를 단평했다.
의료법 제59조 제1항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건의료 정책을 위해 필요하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2024년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진료 유지 명령, 집단행동 금지 명령,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 등으로 전공의들에게 강제 노동을 부과하고, 이에 반대하는 의사(醫師)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남용됐다는 지적이다.
이 이사는 “'단체행동'이라는 용어는 '파업'과 동의어가 아님에도 의사들의 단체행동은 늘 '파업'으로 폄하된다”라며 “의료법 제59조 제1항을 무한한 제한의 가능성으로 해석하는 행정부의 태도는 기본권에 대한 폭압이고, 자의(恣意)에 의한 지배에 불과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기고는 이와 함께 의사의 단체행동권에 관한 법률 제한의 조건에 대해서 고찰하기도 했다.
이 이사에 따르면, 기본권적 지위가 인정되는 표현의 자유나 기본권성이 논의될 수 있는 의사의 단체 행동권도 당연히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에만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의료서비스의 유일한 제공자가 의사라는 특수성과 의료의 공공성 및 사회적 책임성은 공공복리와 질서유지를 의미하고, 따라서 의사들의 단체행동권도 그러한 목적을 위해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다. 모든 권리는 무한정 인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합리적인 제한의 가능성을 미리 설정하는 것이 권리 보호를 위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재희 이사는 “그러한(합리적) 제한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즉 목적 달성이 가능한 수단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제한되는 사익과 추구하는 공익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여야 한다. 이러한 세부적인 조건을 달성할 수 없는 법률은 위헌적인 기본권 제한, 즉 기본권 침해에 해당할 뿐이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의사 단체행동권 제한 조건에 대해 노동조합법이 정한 쟁의행위의 구체적인 절차와 요건들을 통해 답을 확인했다. 근로 3권의 실효적 보장을 위해 발전해 온 노동조합법은 의료법상의 ‘필요한 명령’이나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와 같은 단순히 불명확한 개념보다 훨씬 더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른 전제조건으로 4가지가 제시됐는데, 우선 노동조합법 제42조의2 이하의 필수 유지 업무 개념이다. 즉, 정지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공중의 생명, 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인 필수 유지 업무에 대해서는 정당한 유지, 운영을 위한 필요 최소한의 유지·영 수준, 대상 직무 및 필요 인원 등을 정한 협정을 서면으로 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필수 유지 업무 협정).
또한 객관적 제3자(의사 단체행동에 있어서는 예컨대 국회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에 의한 조정의 필수적 전치(前置) 제도도 적용될 수 있다.
협상 창구의 단일화와 교섭 주체의 명확화도 필요하다. 노동조합법은 교섭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방법부터 명확히 정하고 있는 반면, 2020년 ‘9.4. 의정 합의’ 이후 벌어진 대한의사협회와 그 산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 사이의 갈등이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서로의 오해가 해소되지 않은 채 2024년 벌어지고 있는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와 대한의사협회 사이의 갈등은 교섭의 상대방인 정부로 하여금 누구와 교섭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만을 느게 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전공의들만의 단체행동이라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교섭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고, 모든 의사가 참여하는 단체행동이라면 대한의사협회가 교섭 주체가 되어야 할 것임이 당연하지만, 막상 절차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혼란만 가중될 뿐이라고 이 이사는 짚었다.
마지막으로 현행법의 내용은 아니지만, 소위 ‘노랑봉투법’으로 불렸던 노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에 포함됐던 내용처럼, 조정의 불성립과 이에 따른 정당한 단체행동에 대해 국가가 단지 단체행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이나 행정처분, 거액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단체 행동의 종료를 압박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이재희 이사는 결어를 통해 의료계에서 단체행동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노력 필요에 대해서도 시사했다.
이 이사는 “어떠한 자유나 권리가 기본권적 지위를 인정받는다는 것이 곧 무제한의 자유와 권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하며 “의사의 단체행동권이 헌법상 기본권적 지위를 인정받아 보호를 받는다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이 규정은 반대로 말하면, 국민의 기본권은 필요한 경우를 넘어 제한할 수 없으며, 국회가 제정한 법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제한할 수도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에 “객관적 질서로서의 가치를 가진 기본권의 의미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려면, 기본권이 공익을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제한될 수 있는지까지를 의사 스스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