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12. 저도 잡힐까요? 수사 방식에 대한 이해
알페스를 이용했던 많은 분들이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이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차라리 문제가 터져버리면, 차라리 정말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 변호인을 선임해서 정식으로 대응을 한다거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받을텐데 내가 과연 조사를 받게 될지, 나도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것인지, 만약 조사를 받게 된다면 언제쯤 경찰에서 연락이 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딱밤'을 맞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어느 타이밍에 때릴지 몰라서 움찔움찔 하고 있는 느낌이라면 비유가 적절할까요.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는 것처럼 인터넷을 탈탈 터는 ‘전수조사’, 뭐 이런 것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2020년 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N번방’ 사태 당시에는 서울지방경찰청,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기북부지방경찰청 등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수사기관이 총출동해서 특별수사기간을 만들어놓고 집중적으로 수사를 하면서 심지어 실적경쟁까지 벌였기 때문에 줄줄이 잡아들였지만 현재는 그런 상황 아니거든요. 실제 여성들이 약점을 잡혀서 성착취를 당하고 불법촬영 영상물을 상납해야 했던 ‘N번방’ 사건에 비하면 알페스는 피해라는 것이 무척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처벌의 필요성도 낮고, 일 많고 바쁜 경찰이 이 사건에 올인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누군가에 의해 신고가 들어갔다면, 제3자에 의한 고발 또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었다면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고, 고발, 고소는 “알페스를 처벌해주세요”와 같은 단순한 신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알페스를 제작, 유통한 것으로 보이는 계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거나 외부인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알페스가 유통되고 있는 플랫폼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수준을 의미합니다. 그런 정도의 정보가 있다면 수사기관 입장에서 충분히 수사를 할 수 있고, 신고/고발/고소가 있었던 만큼 수사를 안할 수도 없죠.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의 고발로 인해 현재 영등포경찰서에서는 수사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저도 잡힐까요?”라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각각의 단계를 모두 충족하는지 모두 따져봐야 합니다. ① 하필 본인이 이용한 사이트나 계정에 대해 신고/고소/고발이 이루어져서 수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② 수사기관이 털었을 때 알페스 제작, 유통, 소비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나와야 한다(게시물 삭제나 계정 탈퇴로 인해 서버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 수 있고, 업체나 서버가 해외에 존재해서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를 애초에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③ 수사기관에 의해 털린 자료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④ 내가 관련된 알페스의 내용이 아청물 또는 음란물로 평가할 정도여야 한다.
13.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까요?
내가 수사대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드린 것과 같이 ①~④단계를 모두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에 실제로 경찰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아직 아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계정을 삭제한다거나, 구매이력을 삭제하고 사이트를 탈퇴한다거나, 댓글을 지우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알페스’나 ‘섹테’ 이용내역을 지워줄테니 돈이나 음란영상을 달라며 접근하는 알 수 없는 사람의 꼬임에는 절대 넘어가지 마시고, 다짜고짜 수사에 대비를 하고 양형자료를 준비해야 하니 지금 당장 변호인을 선임하고 수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에도 현혹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①~④단계가 진행 중인지 아닌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변호인부터 선임하고 보는 것은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비가 올 예정이 있는지 일기예보도 보지 않았는데 무작정 매일매일 우비 입고 밖에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비가 와서 우비 입은 덕을 볼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변호사만 좋은 일입니다. 대신, 만약 어느 날 경찰 전화를 받게 된다면 내가 모르는 사이 이미 위의 ①~④ 단계를 모두 통과한 것이니 신속하게 상담을 받고 변호인의 조력을 얻는 것이 좋습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으니 이제 우비를 입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서 로톡 유료상담과 같은 정도의 수고만 들이면서 어떻게 대비를 해야하는지 상담을 받으시면 충분합니다.
물론, 위와 같은 설명은 알페스를 ‘구입’하거나 ‘시청’하거나 ‘소지’한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만약 아청물이나 음란물로 평가받기에 충분한 알페스를 ‘제작’했다거나 ‘판매’했다거나 ‘유포’를 많이 했다면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 경우라면 별도로 상담을 요청해주시기 바랍니다.
14. 자수가 답일까요?
형법 제52조(자수, 자복) ①죄를 범한 후 수사책임이 있는 관서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②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처벌할 수 없는 죄에 있어서 피해자에게 자복한 때에도 전항과 같다.
알페스에 관련된 분들이 10~20대 여성들이 많고 또 그중 대다수가 미성년자이다보니 이와 같은 일을 처음 겪으며 흔들리는 멘탈을 부여잡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두려움에 떨다 ‘차라리 자수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하는데요. 물론 자수를 하는 경우 수사기관과 법원은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임의규정이에요. 자수한다고 해서 무조건 깎아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말 자수가 필요한 상황은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알페스를 ‘구입’, ‘시청’, ‘소지’했다면 자수를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알페스를 구입, 시청, 소지만 했는데 ①~④의 모든 단계를 뚫고 여러분에게까지 경찰의 전화가 닳을 가능성도 낮고, 오히려 자수가 ‘긁어부스럼’이 되어서 일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일단 자수를 한 이상 경찰 입장에서는 수사를 안할 수 없고 수사를 했다면 처벌을 해야 하는데, 현행 아청법은 법정형이 확 높아져서 구입, 시청, 소지의 경우에도 1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자수했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검찰로부터 기소유예를 받을 수 있을지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즉, 가만히 있으면 적발되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굳이 자수를 해서 성범죄 전과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알페스를 ‘제작’, ‘판매’, ‘유포’했다면 변호인과의 상담을 통해 자수를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그 경우에도 위의 경우와 동일하게 ①~④의 모든 단계를 뚫고 여러분에게까지 경찰의 전화가 닳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 알페스가 아청물이나 음란물에 해당되어서 사건이 커질 소지가 있는지, 제작, 판매, 유포한 알페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아야 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변호사와 자세히 상담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