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가. 음란물이란?
전체적으로 관찰·평가해 볼 때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존중·보호되어야 할 인격을 갖춘 존재인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으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
"사회통념에 비추어 전적으로 또는 지배적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문학적·예술적·사상적·과학적·의학적·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
음란물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법원의 정의입니다. 말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영상들은 아무리 야하더라도 ‘영화’라고 부르는데 어떤 영상들은 그냥 ‘야동’이라고 부르잖아요. 청소년관람불가, 이른바 ‘19금 영화’와 ‘포르노’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 전체에서 성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됩니다. 아무리 퇴폐적, 외설적, 노골적인 성적 묘사로 인해서 논란이 된 문제작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화’라면 2시간 정도의 런닝타임 중 그러한 성적묘사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1/4 이 될까 말까 하죠. 나머지는 다양한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 갈등, 줄거리, 문제의식 등을 나타냅니다. 반면 야동, 포르노, 음란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 갈등, 줄거리 등은 성관계로 가기 위한 전조 또는 도입부에 불과하고 등장인물의 관계가 어떻든, 어떤 갈등이 있든 결론은 ‘기승전 성관계’입니다. 전체 영상에서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고 대부분의 시간을 성적 묘사에 할애하죠.
② 문학적,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감동을 받지 않고 오히려 영상을 보고 글을 읽는 내내 불쾌감만을 느끼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저와 같은 일반인, 범인(凡人)의 예술감각에는 와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학적, 예술적, 사상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음란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몇몇 예술영화들, 국내에서는 김기덕, 홍상수와 같은 감독들의 영화들 모두 범인인 저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문학성과 예술성을 인정받는 작품들입니다. 문제작 <즐거운 사라>로 한 시대를 뜨겁게 달궜던 마광수 교수님의 다른 작품들은 서점에서 쉽게 구해볼 수 있는데 막상 읽어보면 저와 같은 일반인으로서는 ‘이런 책을 팔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들이 가득합니다만 에로티시즘, 섹슈얼판타지, 페티시즘 등과 관련하여 그 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글들이죠.
③ 성적 묘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됩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각 주마다 있는 법원들의 상위에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더한 것 만큼의 권위를 가진 사법기관입니다. 연방대법원에서는 ‘예술’과 ‘외설’의 차이점에 대해 “보면 안다 (I know it when I see it)”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마찬가지입니다. 그 성적인 묘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야하다고 소문이 난 영화라 하더라도 막상 그 성적 묘사를 보면 미술감독, 촬영감독님들의 노력 덕분에 ‘아름답다’고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반면 음란물, 야동, 포르노는 촬영 방식이나 촬영 각도, 줌 인/아웃의 정도, 등장인물의 대사와 표현 그 어느 것을 보나 외설적이고 노골적이고 음란할 뿐 ‘아름답다’고 평가하기엔 어려울 것입니다.
나. 알페스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알페스마다 등장인물, 줄거리, 갈등, 구조, 성적 묘사의 정도가 천차만별일 것이기 때문에 길게 설명한 위와 같은 음란물의 기준과 잣대를 하나하나의 알페스 각각에 대입해보면 과연 내가 만든 알페스, 내가 공유한 알페스, 내가 본 알페스가 음란물에 해당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별다른 줄거리가 없다면, 별다른 갈등구조 없이 오로지 주구장창 성관계만 한다면 음란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겠죠. 반면 아무리 성적인 묘사가 노골적이고 찐하다고 하더라도 시적으로, 문학적으로 표현을 했다거나 성관계가 아닌 인물들의 감정의 변화나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 갈등, 삼각관계 등이 만만치 않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묘사되고 있다면 음란물이 아닌 것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오직 성적 만족이나 흥분만을 위해서라면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 또한 얼마든지 있으니 그런 것들을 소비하면 될 것이고, 답답할 수 있는 소설보다는 시각과 음향이 함께 있는 성인동영상을 보면 그만일텐데 굳이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알페스’를 창작하고 공유하고 소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평균적으로 보면 알페스와 같은 팬픽들은 남성들을 소비층으로 하는 일반적인 포르노에 비해서 등장인물의 관계나 갈등, 감정변화 등을 훨씬 더 비중 있게 다루는 편이고, 그 스토리 또한 동성애를 기본으로 깔고 가다보니 동성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합니다. 여성을 소비층으로 하는 포르노와 남성을 소비층으로 하는 포르노만 비교하더라도 그 차이는 명백합니다. 따라서 물론 알페스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형사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위에서 설명드린 부분들을 강조한다면 혹시 수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음란물이 아닌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