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명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재희 변호사입니다. 제가 한동안 의료, 디지털성범죄 사건에 전념하다가, 오랜만에 명예훼손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는데요. 최근 세칭 '한강사건'의 고 손정민 군 친구인 A씨 측 변호사가 일부 유튜버를 실제로 고소하고, 악의적인 네티즌들에 대해서도 고소를 예고하자, 변호사님 이메일로 1200통의 선처 부탁 메일이 쏟아졌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최근 위 1200분들 중 많은 분들로부터, 변호사님이 합의금을 제시하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문의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우선 관련 메일은 모두 단체메일이며, 선처 부탁 메일에 대한 답변으로 본인의 댓글, 게시글 등 행위와 특정정보를 회신할 것을 요구한 뒤, 위 메일을 보낸 사람들 중 일정 수준 이상을 정하여(그 수준이 어떻게 설정된 것인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다시 단체 메일로 "선생님이 단 댓글(게시글이어도 모두 댓글로 표현)의 횟수나 내용이 가볍지 않으나 선생님께서 일정 금액을 합의금으로 지급할 의향이 있다면 합의해드리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이 회신되었습니다. 사실 합의금의 액수는 오직 피해자 측의 결정일 뿐, 정해진 액수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이 포스팅은 이 사건과 관련한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전체적으로 정리해고자 작성하게 되었는데, 쓰고 나니 유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공유합니다.
01. 과연 몇 명이나 고소 당할만한 일을 했을까?
먼저 명예범죄의 공통 요건으로 피해자 A씨에 대한 특정성 문제입니다.
이 부분을 많은 분들이 놓치고 있는데, 심지어 수사기관에서도 피해자 특정성 문제를 어떤 카테고리(범죄 성립의 3요소 : TRS)에서 접근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해자 특정의 문제는 범죄의 "고의", 즉 피해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 명예훼손죄이든 모욕죄이든 "특정인"의 외적 명예를 해한다는 사정을 가해자가 인식할 수 있는 경우, 고의가 인정되어 처벌이 가능한 것입니다.
주의해야할 부분은 피해자의 지인들은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며, 친구들이 기사 등을 보고 연락해 온 카톡 등을 제시("이거 네 얘기 아니니?")하는 경우, 특정성이 인정된다는 루머가 있는데, 이 부분은 실제로 그렇게 처리하였다면 경찰, 검찰, 법원이 모욕죄 등의 특정성에 관한 법리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 주변인들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명예훼손적 사실의 전파가 아니라는 논리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위의 경우에는 만약 가해자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아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전제 하에서 주변인들이 알아볼 수 있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를 알아볼 수 있게끔 글을 쓴 것이어서 "특정 피해자"에 대한 범죄의 "고의"가 인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다는 사유는 "특정성 인정"의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칭 '한강사건'에서는 이미 피해자의 신원, 즉 "고 손정민"이라는 사실이 특정되어 있어, 같은과 친구인 A씨를 주변 사람들은 누구나 알 수 있겠다는 사정을 댓글, 게시글의 작성자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피해자 특정성은 인정되는 사건입니다.
02. 형법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or 정통망법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본 죄는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을만한 내용의" "(허위)사실"을 "공연히" / "정보통신망에" 적시하여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물론 네이버 코난분들이 과도하게 경찰의 수사를 믿지 않고, 지나친 추리와 의혹으로 A를 힘들게 한 사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의 보도 방향이나 경찰 수사의 미진했던 부분들, 그리고 A군 스스로 보여 온 상식적이지 않은 반응들로 인해, 너도 나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과도한 욕설이나, 근거 없는 루머를 확인된 정보처럼 게시"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댓글들은 진실한 사실이거나, 진실한 사실로 믿을 수 밖에 없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경우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내용이거나, "의견에 불과할 뿐 사실 적시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혐의 없다고 판단합니다.
03. 모욕죄에 관하여
공연히 욕설을 한 경우에 있어서는 두 말 할 필요없이 잘못된 행위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의견 개진의 경우에도 모욕죄로 법적 처벌을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연락을 주신 상당수 가해자들의 댓글이나 게시글은 제가 보기에는 당시 사회분위기나 언론 등을 통해 충분히 개진할 수 있는 의견이며 시나리오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최종적으로 드러난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섣불리 "모욕"행위로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현재 수사기관에서 A군의 무고함을 입증해 준 만큼 최소한 네티즌들에 대한 대량고소(예고) 및 합의금 요구는 아래에서 보듯 "부당이득죄"의 적용을 검토할 여지가 충분하고, 민사적으로 고소 당한 사람들 중 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하여는 "고소권 남용"행위에 따라 오히려 고소인 측이 손해배상을 청구 당할 수 있는 사안으로 판단됩니다.
04. 네티즌 대량 고소의 역사와 향후 입법적 해결의 필요성
솔직한 이야기로 저도 예전에 네티즌들을 대량 고소하겠다고 공지하고, 사과 선처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합의한 적도 있고, 돈을 받지 않고 합의해 준 적도 많이 있지만, 이런 사건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로운 시장" 위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한 사람이 모두를 침묵시키는 독재가 부당하듯,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 또한 부당하다. 그 한 사람의 말이 진리일 수도 있고, 진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다수가 진리로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한 의심과 비판을 통해 더욱 확고한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을 침묵시켜서 확고한 진리로 다가갈 기회를 잃는 것보다 더 유용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즉, 욕설이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된 사실인양 작성한 것이 아니라면, "내 생각에는 ~~~ 한 것이 아닐까" 정도로 쓰여진 내용은 결코 고소되거나 처벌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실 없는 죄도 고소할 수 있고, 그래서 무고죄를 두어 처벌하죠. 물론 무고는 "허위의 사실"을 신고할 때, 즉 어떤 글을 쓴 적이 없는 사람을 글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 어떤 글을 썼다고 신고할 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따라서 댓글, 게시글을 쓴 성명불상자를 고소한 이상, 고소인에게 절대로 무고죄는 성립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경우 피고소인들은 해당 게시글, 댓글의 내용이 죄가 아님을 잘 설명하면 무혐의(증거불충분) 또는 죄가안됨으로 풀려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고소를 당하였다는 사실" 자체를 매우 두려워 합니다. 따라서 친고죄인 모욕죄로 고소를 당하면, 어떻게든 합의를 빨리 하고, 수사 자체를 받지 않고 싶어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대량 고소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심리를 악용하는 행위입니다. 과거 홍가혜 씨가 네티즌 수백명을 고소하였을 때, 당시 "제2의 홍가혜 막는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 박근혜 정부 당시 대검찰청은 이와 같은 대량 고소(소위 '합의금 장사')에 대해 피의자는 최대한 무혐의, 죄가안됨, 기소유예로 처리하고, 고소인에 대하여는 "부당이득죄"의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와 같은 대량고소 사건은 끊이지 않았고, 검찰이 부당이득죄 적용을 검토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변호사들은 이후 점점 더 대량고소를 남발했는데, 사실은 죄가 없었을 무수히 많은 네티즌들이 더 이상 인터넷에 아무런 말도 쓰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선진국가들에서 명예훼손과 모욕을 범죄로 다루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최근에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하여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향후 입법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05. 해결방안
입법적 해결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이번 사건에 대하여 저는 다음과 같이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1) 굳이 본인이 불안해서 합의를 보시는 분들께 : 저도 해봤지만, 됐다고 고소할 생각이 없다고 하는데도 변호사에게 계속 메일을 보내서 제발 합의해달라고 조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정말 이기적인 생각을 바꿔주시기 바랍니다. 고소를 할지 말지는 피해자가 결정하는 것이고, 변호사는 바쁩니다. 죄가 없는 사람을 고소하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굳이 연락을 해서 합의하겠다고 하신다면, 저라면 오히려 합의금 많이 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변호사의 시간을 뺐은 것이니까요. 따라서 굳이 피해자 변호사님이 괜찮다고 하면 합의금 받을 계좌번호 달라고 계속 이메일 보내지 마세요.
2) 다음으로 변호사님이 원하는 합의금을 낼 수 없는 상황의 분들인데, 범죄가 되는지를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메일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 자신이 변호사님께 보냈던 게시글, 댓글 적은 메일이 자백이 되어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캡쳐한 자료를 보내지 않았다면, 게시글, 댓글을 적은 메일은 "자백"이 맞지만, 정식재판에 있어서는 자백의 보강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기소유예의 경우 헌법소원을, 벌금형 약식기소의 경우라면 정식재판을 청구한 뒤, 자백 외에 증거가 없어 무죄라는 주장이 가능합니다(증거불충분).
3) 다음으로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으나, (합의금을 내지 않는 전제에서는) 용서를 비는게 맞다고 생각하여 메일로 선처를 부탁한 분들의 경우에는 합의금은 낼 수 없지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의 메일을 다시 보내드리세요. 도의적인 책임은 인정할 수 있으나, 법적 책임은 없을 가능성이 높은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4) 다음으로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처벌 받는 것보다 선처 받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사람들은 댓글의 수준에 따라 30-200만원 정도의 합의금 액수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적어서 보내세요. 자신이 어느 정도 합의금을 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께는 이런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합의금은 정해진 액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는 가해자들이 과연 얼마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지, 그 마음이 보고 싶을 뿐입니다. 마치 교회에 헌금하듯, 본인의 마음이 담겼다면 액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5) 마지막으로 심각한 비방과 욕설, 허위사실을 사실인척 작성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뉘우치지도 않는 사람이라면, 그냥 고소 당하시고, 수사 받고, 처벌 받고,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당하세요. 그래도 변호사 비용보다는 비싸지 않을테니, 굳이 불필요한 상담 신청으로 돈 낭비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