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업체 선정 단계
발주처가 신제품 또는 신규 프로젝트 개발을 위하여 하청업체를 선정하는 단계에서부터 기술탈취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가령, 경쟁입찰을 통한 업체 선정 시, 발주처가 응찰 업체로부터 다양한 제안서와 견적서를 제공받으면서 '개발 능력 인증'을 빌미로 추가적인 기술자료나 경영정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요.
물론, 업체 선정에 꼭 필요한 정보는 발주처로서도 당연히 제공을 받아야 향후 거래 관계에서 불측의 분쟁을 예방할 수 있겠지만,
① 업체 선정과는 무관한 자료를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② 업체 선정과 관련이 있는 자료라고 하더라도 이를 업체 선정 과정에만 활용하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유용하는 것은 모두 기술탈취로서 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쟁 입찰 시 확보한 데이터를 원청이 향후 다른 사업에 무단으로 사용한다든지, 또 다른 하청업체에 무단으로 제공함으로써 단가를 낮추는 사례가 다수 적발되고 있는바, 기업인으로서는 이러한 점들을 각별히 유념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2. 연구개발, 선행개발, PoC 단계
어떤 프로젝트나 제품 제작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에 앞서 'PoC 계약' 또는 'Proto type 개발'을 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대부분의 하청업체들은 PoC 이후의 본 계약이라든지, 제품 양산 등을 본인들이 다시 맡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에 기대어, 원청과 제대로 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무상으로 각종 용역을 제공하곤 하는데요.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일부 원청에서는 선행연구개발 단계에서 취득한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이 직접 본 제품을 제작하거나 다른 저렴한 업체에 데이터를 전달하여 프로젝트를 맡기곤 합니다. 하청업체로서는 그야말로 토사구팽을 당하는 셈이죠.
그럼에도 주요 거래처를 잃을 것을 염려하여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한 채 속만 앓고 있는게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으셨다면 법의 도움을 받아 손해를 보상받는 편이 좋습니다. 잘못된 관행은 바꿔나가야 합니다.
3. 생산 및 하자 유지보수 단계
우여곡절 끝에 본 계약을 따냈더라도,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원청에서는 스펙 확인, 하자발생 예방 등 각종 목적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도면, 회로도, 검사성적서 제출을 요구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소스 값, 코드 값, 물성치 등 핵심 영업비밀도 스스럼 없이 요구를 하구요. '승인도' 등을 통하여 하청업체의 기술적 자료를 모두 제공했음에도 말이죠.
기술용역이나 각종 프로젝트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진행상황 점검이라는 추상적인 목적으로 너무나도 방대한 자료들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인망식 자료 요구에 하청업체로서는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렵고 원청과의 관계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순순히 응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회사의 영업비밀이 거의 통째로 넘어간 상황에서도, 원청으로부터 해당 자료를 반환 받거나 폐기 확인을 받는 경우는 드문데요. 그러다보니 원청에서는 이러한 자료가 마치 자신의 자료인양 함부로 유용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직접 활용하거나, 다른 업체에 제공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원청과의 거래가 끊기게 되고, 알고보니 자신의 경쟁사가 원청과 거래를 하고 있는 상황을 손 놓고 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4. 악순환의 반복
이렇게 '업체선정 - 선행개발 - 생산 및 하자보수' 라는 큰 틀의 cycle이 반복될 수록 기술탈취의 문제는 심각해져만 갑니다. 하나의 제품이나 프로젝트에 관한 계약이 끝나면, 또 다른 제품이나 프로젝트에 관한 신규 업체를 선정하여야 하기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 앞서 본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반복됩니다. 하청업체들은 돌아가면서 기술을 탈취당하고, 원청은 이들의 자료를 블랙홀처럼 흡수를 하게 되죠.
물론 원청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청의 기술이 하청의 기술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굳이 하청의 기술을 탈취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을 하죠.
특히, 하청의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각종 기술을 지도하고 감독하며 많은 노하우를 전수해주므로, 오히려 자신들이 불리한 것 아니냐고 항변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항변은 하도급 업체를 마치 자신의 수족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었으면 하청업체를 인수하던가 하청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면 될 것인데 말입니다. 원청과 하청은 엄연히 다른 회사이고, 다른 회사의 각종 영업비밀을 자유롭게 들여다 볼 권리는 우리 법에 없습니다.
5. 기술자료, 영업비밀. 이제 스스로 지키셔야 합니다.
기술을 빼앗긴 기업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당장의 거래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기업의 핵심정보는 반드시 지켜내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다시 말해, 기술자료, 영업비밀, 경영정보 등 기업 정보는 그 누구도 함부로 요구하거나 유용할 수 없는, 즉 '법의 보호를 받는 지적재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