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변호사 선임을 권유하는 변호사와 권유하지 않는 변호사 중에 누가 더 좋은 변호사인가요?
최근에 이런 질문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수사 가능성이 낮은 사건에서 변호사 선임을 왜 권하는 것이고? 왜 저는 그런 선임을 권하지 않느냐고요.
명확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확고하게 의뢰인의 입장에서나 변호사의 입장에서 모두 전자(권유"하는" 변호사)가 더 좋은 변호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경우 선임을 권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1. 먼저 왜 '더 좋은 변호사냐?'의 문제를 의뢰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왜 "보험"에 가입하지요? 혹시나 모를 위험이 찾아왔을 때를 대비해서, 위험이 발생하는 빈도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가입자들 간에 위험을 나누기 위해서죠?
현대사회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내게 위험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위험이 나에게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 "불안"을 야기하죠. 그렇다면, 그러한 불안을 상담하기 위해 비밀이 보장되고, 조력을 해줄 변호사를 찾아 정식 선임료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일부금 계약을 하는 것은 의뢰인의 불안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도저히 불안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위험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며, 심리적으로도 안심을 얻고, 중간중간 법적인 조언도 얻고 변호사님과 상담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가 있겠죠.
의뢰인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2. 변호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볼까요?
변호사는 물론 공익적인 역할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소득활동, 즉 직업으로서 변호사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보험을 잘 판매하는 영업사원은 일을 잘 한다고 칭찬 받죠? 돈을 잘 버는 변호사도 당연히 칭찬을 받아야죠. 왜 어떤 변호사가 돈을 잘 번다는 이유로 욕심 많은 악덕 상인처럼 묘사되고 욕을 들어야 하나요? 당연히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변호사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노동을 최소화하고(물론 의뢰인이 된 이상 지속적으로 상담을 해드려야 하고, 연락하실 때마다 잘 받아서 불안을 달래드려야 하는 엄청난 감정 노동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저희 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수 있겠지만...), 수익을 최대화하면 그 자체로 매우 뛰어난 변호사입니다.
3. 변호사 선임 비용은 천차만별입니다!
그 변호사의 시간과 정성을 얼마에 사느냐의 문제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됩니다. 따라서 오늘 선임비용이 300만원이었다가, 내일 500만원이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일입니다.
법리나 실무는 2-3년만 송무해보면 다 비슷비슷합니다. 오히려 한 사건에 쏟을 시간과 정성이 누가 더 많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다른 사건에 쓸 시간과 정성을 자신에게 더 쏟아 달라고 의뢰인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어떤 변호사님은 300만원에 해준다는데, 왜 변호사님은 500만원인가요?" 라는 질문에 500만원을 제시했던 변호사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그럼 300만원이 합리적이네요. 그 변호사님께서도 잘 도와주실거에요. 그쪽으로 얼른 가세요". 결론은 500만원 변호사님과 진행하지 않아 패소? 아닙니다. 결론은 그 사실관계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변호사의 역량에 따라 결론이 바뀐다면 경찰관, 검사, 판사는 필요도 없겠지요?).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정성을 들여서 의뢰인의 주장을 요약하고, 정리하여,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제가 변호사의 선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더 진정성 있는 권유가 됩니다. 비용 문제로 저를 선임하시지 못하더라도, 법률구조공단에서라도 도움을 받으라고 말씀드리고 있기 때문에, 승소 가능성이 낮거나, 변호사 선임 실익이 없는 경우에만 변호사 선임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반드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건에는 선임을 권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이미 제가 맡고 있는 의뢰인들에 대한 사건만으로 충분히 제 시간을 full 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말도 없고, 밤낮이 따로 없습니다. 매일 아침 5시45분에 알람이 울리고, 하루 종일 기존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중간중간 신건 상담도 진행하고, 보통 새벽 1-2시 사이에 잠깐 눈만 붙입니다. 그래서 굳이 변호사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일어날 가능성이 0에 가까운 사건에 대해서 의뢰인으로부터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전화를 반복적으로 받고 싶지 않습니다. (수임한 이후 담당 변호사와 통화가 안되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의뢰인 전화는 가급적 지체 없이 즉시 콜백을 원칙으로 합니다.) 최종적으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때 괜히 저한테 와서 환불해달라고 하실까봐 그게 더 피곤합니다. (환불해 줄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상담도 수임료 이상 했을테구요) 그래서 저는 굳이 바쁜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기가 싫어서 선임을 권유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