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계속됩니다)
16. 교복을 입고 있으면 아청물 되는거 아닌가요?
알페스 소설의 모델이 된 아이돌의 나이가 실제로는 성인이든 미성년자이든 관계없이 소설 속에서는 고등학생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고, 자연스럽게 일러스트나 만화에서도 교복이나 와이셔츠를 입고 등장하는 씬이 많다보니 ‘미성년자를 표현했으니 아청물이 되는거 아닌가’ 하고 불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청법에 있는 ‘아청물’ 규정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보여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① 2010. 1. 1. 아청법의 시작 당시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은 아동ㆍ청소년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
② 2012. 3. 16. 개정 이후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은 아동ㆍ청소년 또는 아동ㆍ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③ 2013. 6. 19. 개정 이후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이란 아동ㆍ청소년 또는 아동ㆍ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④ 2020. 6. 2. 개정 이후
“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이란 아동ㆍ청소년 또는 아동ㆍ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갑자기 법 공부하는 느낌이 들텐데요. ③에서 ④로 바뀐 것은 N번방 사건 이후로 다른 것은 바뀌지 않은채 그 이름만 ‘아청음란물’에서 ‘아청성착취물’로 바뀐 것이니 따로 언급하지 않고 ③까지의 변화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에서 ②로 개정된 것은 왜일까요? 처음에 법을 만들 때는 미성년자를 데리고 음란물을 찍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①처럼 만들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실제로 미성년자를 데리고 찍은 것은 아닌데 만화, 2D로도 얼마든지 미성년자 음란물을 만들 수 있고 심지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3D로 만들면 실제 사람이랑 별로 차이도 안나게 느껴지는거에요. 그래서 이렇게 실제 사람이 아닌 만화, 2D, 3D의 형태로 미성년자의 성관계를 묘사한 것들도 금지하기 위해서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의 등장’으로 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럼 ②에서 ③으로 바뀐 것은 왜일까요? 잘보시면 ②로 바뀐지 불과 1년 만에 또다시 법이 바뀌어서 “명백하게”라는 문구가 추가되었잖아요. 하나의 법이 개정되기 위해서 걸리는 노력과 시간을 고려하면 정말 이건 국회가 매우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2012년부터 이 법의 적용을 두고 일대 혼란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성인영화, AV들은 우리나라에서 유통시키거나 판매하면 불법이 되지만(정보통신망법위반) 적어도 그걸 다운 받아서 보고 시청하면 불법은 아니었어요. 마치 명품 짝퉁시장처럼 판매/공급은 처벌하지만 소비/시청은 처벌하지 않는거죠. 그런데 AV배우들이 교복을 입고 나오면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해서 성관계를 한 영상이니까 아청물이 되고, 그걸 다운로드 받기만 해도 전부 아청물 소지죄로 처벌받을 수 있게 되어버린거에요.
그나마 일본 AV는 좀 나은편인데 일반 영화들도 문제가 됩니다. 영화 <은교>는 극중에서 17세 고등학생인 은교와 노년의 이적요 작가, 중년의 서지우 작가가 성관계를 하는 모습이 묘사되는데 실제로 해당 역할을 연기한 김고은 배우는 만 20세의 성인이었거든요. 하지만 ②에 따르자면 영화 <은교>도 아청물이 되어버립니다! 제작자, 감독, 배우 모두 처벌받을 수 있는거죠.

그래서 아청물에 대한 정의 규정에 “명백하게”가 추가되었습니다. 다른 법률 어디를 보더라도 ‘명백하게’라고 되어있는 것은 흔치 않아요. 아청법의 처벌수위가 높은 만큼 아청물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엄격하게 따져서 지나치게 처벌을 확대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관점을 바꿔서 생각하셔야 해요. 쉽게 말해서 “이거 교복입고 있으니까 아청물 아닌가?”라고 의심이 든다면 오히려 그건 아청물 아니라고 봐도 됩니다. 긴가민가 하다면 명백하지 않은거니까요. 누가 보더라도, 10명에게 물어봐도 10명 모두가 하나같이 “이건 아청물이지”라고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아청물이 될 수 있는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내가 본 것들만 판단기준으로 삼아서 상상하다보면 대체 어느 정도여야지 ‘명백하게 아청물’인가 잘 이해가 안되고 궁금하시겠지만 실제로 법원으로부터 처벌받은 사례를 보면 쉽습니다. 일본에서 제작된 만화(망가)인데 주인공 여성이 미성년자/소녀로 묘사되고 있고 실제로 그림 자체도 키와 몸이 작고 가슴, 허리, 엉덩이 등 성적으로 묘사될 수 있는 신체 부위의 발육, 발달 상태를 미성숙하게 표현했습니다. 비록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가봐도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하게끔 표현을 한거에요. 그런데 그 소녀 캐릭터가 극중에서 적나라하게 성관계를 하는 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면 아청물이 되는겁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